▲ 정기훈 기자

“롤러대를 잡고 계속 (페인트)칠을 하거든요. 손에 힘이 들어가니까 손이 다 변형된 거예요.”

울먹이듯 말을 잇던 김화영(60·가명)씨가 손가락 열 개를 펼쳤다. 23년차 도장노동자인 그의 오른손 중지와 약지 첫 번째 마디는 작은 구슬이 들어 있는 것마냥 울퉁불퉁 튀어 나왔다. 롤러를 쥘 때 주로 힘이 들어가는 부위다. “억수로 아팠다”던 그는 병원을 찾지 않았다. 이유를 묻자 그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기도 힘든데 병원 다니면 병원에 돈 다 가져다주고, 어떻게 먹고 사느냐”고 되물었다. 대우조선해양에서만 18년째 일하고 있지만 그는 올해 4월까지 최저시급 9천160원을 받고 일했다. 노조에 가입하고 파업에 동참한 이유다.

<매일노동뉴스>가 18일 노조와는 거리가 멀었던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이 왜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에 가입하고, ‘불법파업’이라는 눈총을 견디며 50일 가까이 파업에 참여하는지 저마다의 이유를 들었다. 인터뷰는 지난 12일과 15일 각각 경남 거제 옥포조선소, 서울 영등포구 산업은행 앞 단식농성장에서 이뤄졌고, 전화로 추가 인터뷰가 진행됐다.

“중노동에 골병 든 하청노동자”

화영씨를 만난 곳은 지난 12일 오후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선각삼거리 앞이었다. 그를 포함한 100여명의 하청노동자들은 1도크 점거농성을 하는 유최안 부지회장과 조합원 6명을 지키고 응원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화영씨도 그중 하나였다. 체구가 작은 그는 2003년 옥포조선소에 들어와 18년 동안 도장노동자로 일했다. 오랜 노동의 흔적이 곳곳에 남았지만, 그는 산재를 신청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화영씨는 “억수로 아픈 시기가 지나고 나면 손가락 자체가 굳는다”며 “20년 넘게 일하다 보니 생긴 관절염인데도 병원에 가면 퇴행성 관절염이라고만 나오는데 이걸 산재로 처리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래도 산재 신청하지 왜 안 했어?” 화영씨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동료의 타박이 이어졌다. 파워공으로 18년째 일한 한성빈(47·가명)씨다. 5킬로그램쯤 하는 파워그라인더를 들고 철판을 매끄럽게 다듬는 일을 하는 한씨는 자신의 손을 내밀었다. 손가락과 손바닥 사이, 손목에는 수술 흉터로 가득했다.

“벌어먹고 살려다 보니 참고, 또 참고 했는데 통증이 심해서 밤에 자다가도 서너 번씩 깨요. 저녁에 잠을 못 자니까 낮에 피곤해서 일하기 힘들고, 그래서 수술했어요.” 3~4년 전쯤 손목터널증후군으로 양손 모두를 수술했던 때를 떠올렸다. 한씨는 통증이 심해 병원을 꾸준히 방문했던 터라 산재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

어렵게 인정받은 산재지만 한씨는 요양에 필요한 최소 기간 3개월을 채우치 못하고 업무에 복귀했다. 그는 “요양급여가 너무 적다 보니 한 달 만에 요양급여를 포기하고 회사에 들어갔다”며 “진짜 손목이 아파 울면서 일했다”고 그때를 떠올렸다. 한씨는 1년 전쯤 방아쇠증후군으로 또 한 차례 수술을 했다. 여기저기 고장난 몸 탓에 그는 최근 일하기가 버겁다고 했다. “손목하고 아귀에 힘을 주고 그라인더 작업을 해야 하는데, 30초 이상 하면 (손에) 힘이 쫙 풀린다”며 “투쟁(파업)이 답이 안 나오는 게 아니라, 내가 솔직히 1년을 더 벌어먹을 수 있는지 장담을 못하는 상황”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그는 충분히 쉬지 못하고 일터로 나왔던 과거의 자신을 책망했다.

“최저임금 9천160원
조선소에서는 ‘최고’임금”

개인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조선소 노동자 중 직업병 하나 없는 노동자는 없다. 그만큼 하는 일은 고되다. 그런데 급여는 최저임금 수준의 저임금이다. 이 모순적인 상황은 하청노동자가 일손을 놓게 만들었다. 18일로 파업 47일째다.

화영씨는 “조선소는 정말 목숨 걸고 일하는 곳인데 여성노동자 같은 경우는 4월까지 9천160원을 받았다”며 “단 9천160원 받고 주 52시간 일하면 도저히 먹고살 길이 없다.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토로했다. 5월은 기성금 인상에 따라 시급이 140원 올랐다.

조선소 안 지원 업무를 하는 정한영(42·가명)씨 사정도 비슷하다. 그는 약 15년 동안 파이프를 설치(기관의장)하는 일을 했지만 뇌종양이 발병한 뒤 4개월 전부터 물류 지원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해체한 발판 재료들이 뒤죽박죽 섞인 채로 오면, 다시 설치하기 편하게 재료별로 분류하는 작업을 주로 했다. 정식 업무시작 시간은 오전 8시지만 ‘조기 청소’를 위해 그는 오전 7시 전에 출근했다. 두 달 전 노조에 가입하고 나서야 그는 조기 청소는 추가근무에 해당하는 노동이란 사실을 알았다.

노조에 가입한 결정적 이유는 최저시급 탓이다. 그는 “그냥 무조건 최저시급, 업체를 옮기면 또 최저시급”이라며 “우리 같은 업체에 10년 일한 형님이 있는데, 그 형님도 최저시급”이라고 전했다. 최근 정씨가 소속된 업체 ㄷ사는 4~5년차 직원에게 시급을 올려줬는데, 그렇게 오른 시급이 최저시급보다 40원 많은 9천200원이다. 회사는 원청인 대우조선해양이 기성금 1%를 올려 줬다는데, 확인할 길이 없다.

정씨는 “나라에서 정해 준 최저시급은 말 그대로 최저시급인데, 조선소에서 일하는 분들한테는 그게 최대(최고)시급”이라며 “시급이 9천500원 넘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상황을 모르는 분들이 (파업하는 우리를) 나쁘게 말하는데, 정말 여름에 딱 일주일만 일하다 가면 (우리가 왜 이러는지) 느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위험 업무 떠안고, 사고 위험 감수”

하청노동자들은 조선소에서 없어선 안 될 인력이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따르면 올해 5월 기준 5만2천138명이 중대형 조선사 11곳에서 일한다. 4만854명인 원청 직원보다 많다. 이들은 원청 직원이 수행하기 꺼리는 온갖 위험 업무를 떠안는다. 그런데 불황기에는 제일 먼저 잘려 나간다. 2014년 13만명이 넘던 하청노동자는 조선업 불황기를 거쳐 60%가량 줄었다. ‘조선업 인력난’ 시기에 귀한 대접을 받을 만한데 현장에서는 괄시와 차별을 받기 일쑤다. “하청노동자도 인간이다. 인간답게 살아 보자”는 구호가 나온 배경이다.

탑재 노동자 최민씨는 지난 12일 동료 2명과 함께 서울로 올라왔다. 대우조선해양의 대주주인 산업은행에 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일주일째 단식 중이다. 그가 하는 일은 용접이다. 선박을 만드는 재료가 되는 블록을 설계도면에 맞게 조립하고 부착하는 일이다. 한여름에는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여름철 뙤약볕 아래 달아오른 철판을 용접하니 죽을 맛이란다. 철판은 달걀 프라이가 가능할 정도로 뜨겁다.

원청 노동자와 하는 일이 같지만, 임금은 물론 노동강도도 차이가 크다. 최민씨는 “(업무량에 따른) 투입인원도 다르다”며 “제가 혼자 할 일은 원청 직원 3~5명이 하는 식”이라고 주장했다. “하청노동자가 기일에 맞춰 작업을 끝내지 못하면 ‘업무 능률이 떨어진다’는 말부터 기성금 이야기까지 나오지만, 감히 원청 직원에는 못 그런다”며 옆에 있던 동료들이 맞장구를 쳤다.

빠른 작업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기도 한다. 최민씨는 “예전에는 작업 위치에서 2미터 정도 되는 곳에 에어호스나 용접기를 두는 레일을 설치한 후 작업을 시작했다면 요즘에는 그런 준비 없이 작업이 시작할 때가 많다”며 “용접을 하면 불똥이 바닥에 떨어져 큰 사고가 날 수 있어서 장비를 두면 안 되는데 회사가 빨리 하라고 ‘쪼니’ 준비 없이 작업을 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지회 조합원 이광훈씨는 “혼재작업은 위험하니 하지 못하도록 하는데 과거 도장하는 사람 옆에서 의장재 단다고 ‘불질’하고, 파워(공)가 그라인더하고, 그라인더 작업 끝나면 바로 들어가서 도장하는 작업까지 했다”며 “원청에서 말하는 것처럼 3년치 수주가 터지기 시작하면 난리가 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협력업체 마음대로?
주먹구구식, 깜깜이 임금”

조선소의 열악한 노동환경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조선소에 일하러 갔다가 하루 만에 도망쳐 나왔다는 고백은 쉽게 들을 수 있다. 그런데 왜 지금에야 이런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걸까. 흩어졌던 목소리가 ‘노조’란 구심점으로 모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조선소 하청노동자는 적게는 수십 곳, 많게는 100곳 넘는 하청업체에 흩어져 고용돼 있다. 공정에 따라 임금이 다른 데다 본공 시급직·본공 일당직·일용직(일당)·물량팀까지 고용형태도 다양하다. 다단계 하청구조 속에서 사용자 책임은 옅어진다. 하청업체는 원청이 주는 기성금이 얼마인지 노동자에게 공개하지 않으면서도 “매년 기성금이 줄어든다”고 한다. 원청은 “기성금은 계속 올랐다”고 주장한다. 무엇이 진실인지조차 알기 어려운 구조에 놓인 셈이다.

지난 12일 단식에 돌입한 강재봉씨는 “같은 용접도 어디서 하는지에 따라서 (임금이) 또 다르고, 과거에는 상대적으로 더 위험한 업무에 더 많은 (임금을) 주기도 했는데 임금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어느 순간 비슷해진 것 같다”며 “임금분포가 점점 복잡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표가 마음에 드는 직원의 시급을 조금 더 높게 쳐 주는 일이 일어날 만큼 체계가 없다. 노동자 간 임금을 공개하지 않으면 알 턱이 없는 ‘깜깜이’ 구조다.

결국 하청노동자는 노조로 뭉쳤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중이다. 지난해 파워공들은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작업을 거부했고 결국 협력업체와 2만원 인상에 합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임금·단체협약을 체결한 것은 아니라 약속을 지키지 않는 회사도 나왔다.

결국 지회는 설립 5년 만인 올해 처음 22개 협력업체와 교섭을 시작했다. 하지만 원청이 돈 주머니를 쥔 구조에서 하청업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쟁의권을 획득한 지회가 ‘합법’파업을 시작한 이유다.

“생계 걸고 노조하는 하청노동자”

파업 47일차인 이날 하청노동자가 ‘인간답게 살기 위해’ 갈 길은 여전히 아득하다.

화영씨가 다니던 ‘진형’은 지난달 30일 폐업했다. ‘경영사정 악화’가 이유였다. 업체 노동자 120명 중 80명 넘게 노조에 가입한 터라 지회는 노조파괴를 위한 폐업이라고 보고 있다.

사장은 노동자들에게 임금도 모두 지급하지 않은 채 자취를 감췄다. 폐업 직전인 5월 시급은 최저임금에서 140원 오른 9천300원이 됐지만 6월 월급날 화영씨 통장에 들어온 돈은 전체 임금의 20%뿐이다.

옥포조선소에서 18년 동안 일하면서 다섯 차례 넘게 업체가 변경됐지만 고용승계가 되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던 화영씨는 ‘고용승계’를 요구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는 “노조에 가입돼 있으니 다른 업체에서도 받아 주지 않고 있다”고 답답해 했다.

안준호 지회 부지회장은 “노조가 없는 회사들은 보통 폐업하고, 노동자의 체당금 신청을 도와주는 대가로 처벌불원서를 작성하게 한다”며 “노동자는 당장 돈이 급하니까 일단 서명하게 되고, 업체는 퇴직금조로 (임금을 지불하지 않아 생긴) 돈을 챙기는 것”이라고 전했다. 진형 소속 노동자들은 대우조선해양을 상대로 진형에 지급할 기성금에 대해 가압류를 신청한 상태다. 안 부지회장은 “돈을 늦게 받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 노동의 대가를 돌려받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갈 길은 아득하지만 하청노동자는 이렇게 권리를 찾기 위한 걸음을 한걸음씩 옮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