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LG트윈타워 동관 주차장 앞에 텐트를 치려고 했어요. 동관에 구광모 회장 집무실이 있거든요. 그런데 와 보니 연예인들 타는 차 그거 뭐라고 하죠? 검은색 큰 차, 그걸 다 세워 놓은 거예요. 원래 텅텅 비어 있던 곳인데….”

한 명이 겨우 몸을 누일 수 있는 텐트 안에서 김영선(63·가명)씨가 서 있지 말고 들어와 앉으라고 손짓했다. 그는 낮에 있었던 일을 술술 이야기했다. 5월이면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로 일한 지 8년이지만, 노조에 가입하고 동료와 함께 고용승계를 요구하는 농성을 하면서 겪은 경험은 생전 처음 겪는 일투성이다. 영선씨는 “로비에서 동관하고 서관으로 가는 문에 방화셔터를 내렸다”며 “일한 지 만 8년이 다 돼 가는데 방화셔터가 내려오는 것은 처음 봤다”고 기막혀 했다.

지난 22일 오후 30여명의 청소노동자들이 투쟁 100일을 사흘 앞두고 LG트윈타워 앞에 ‘행복한 고용승계 텐트촌’을 꾸렸다. 첫날 설치된 텐트는 42개로, 투쟁 100일이 되는 25일까지 100개의 텐트를 설치하는 것이 목표다. 당초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는 50개 텐트를 준비해 왔지만, 텐트를 펼치는 것을 막으려는 원청과 실랑이 과정에서 8개가 손상됐다.

“청소노동자 연대 덕에 버텨”

“언니, 세수 안 해?”

“무슨 세수를 해. 그냥 자.”

김영선씨 물음에 박지연(63·가명)씨가 대꾸했다. 박소영 LG트윈타워분회장은 “물티슈 있어? 선크림인 줄 알고 폼클렌징(얼굴 세안제)을 발랐다”며 얼굴에 하얀 거품이 묻은 채로 물티슈를 찾았다. “아이코” 동료들의 입에서 웃음이 터졌다.

“감회가 새로워요. 이 많은 텐트를 보니 안정감도 들고, 아까 진짜 깜짝 놀랐거든요.”

박소영 분회장의 눈이 반짝였다. “경찰이랑 용역경비업체가 텐트를 걷으려고 해서 펼치자 마자 텐트 안에 들어가 앉아 버렸어요. 경찰과 용역경비업체가 우리보다 수가 많았는데도, 다시 나와 보니 텐트 수십개가 다 펼쳐져 있는 거예요. 이런 게 바로 연대의 힘이구나 싶었죠.”

청소노동자들은 “연대는 노동자들을 버티게 하는 힘”이라고 입을 모았다. 박지연씨는 “육십 넘은 할머니들이 무슨 힘이 있냐”며 “연대해 주는 청년들 힘이 많이 크다”고 고마워 했다. 두 아들을 둔 지연씨는 혹여 자식들이 걱정할까 봐 남편에게만 사실을 말하고 집을 나섰다고 했다.

청소노동자 사이에 끼어 앉은 청년들은 밥 대신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었다. 2021 함께살자 청년·학생 연대 실천단으로 활동하는 대학생 박시현(24)씨는 청소노동자와 일박을 자청하면서 “집에 가면 매트리스 없으니까 여기서 자고 가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텐트 안에는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를 막으려 두툼한 스티로폼이 깔려 있다.

회계사 시험을 준비하는 졸업반 대학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김우솔(24·가명)씨는 “대학 안에서 청소노동자가 임금투쟁하는 것에 관심을 갖다 보니 자연스레 바깥 세상 문제도 관심을 가지게 됐다”며 연대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노조 만들었다고 90일 넘게 길바닥에 내던져”

평화로웠던 집회 분위기는 원청인 에스앤아이코퍼레이션 로고가 새겨진 옷을 입은 직원들이 바닥에 물을 뿌리면서 아수라장이 됐다. 원청은 텐트에 물을 직접 끼얹으면 문제가 될까 걱정했는지 줄지어 놓은 큰 플라스틱 통에 넘치도록 물을 담았다. 오후 8시께였다. 흘러넘친 물은 물길을 만들어 바닥을 흥건하게 적셨다. 청소노동자가 하룻밤 지새워야 하는 텐트도 순식간에 젖었다.

노조가 사측에 사과를 요구하자 경찰 관계자는 “(원청이 한 일이) 잘못된 것은 맞다”면서도 “사과할 정도 되는 사람이 물을 뿌렸겠냐”며 노조를 달랬다. “경찰은 왜 LG편만 들어요?”라는 청소노동자 절규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경찰 경고와 함께 허공에 퍼졌다.

결국 한바탕 소란은 경찰 수십 명이 동원되고 노동자와 시민이 바리케이드처럼 서 있는 큰 물통을 넘어뜨려 물을 빼낸 뒤에야 사그라들었다. 청소노동자들은 자정이 넘어서야 잠을 청할 수 있었다.

최명자 조합원은 “우리가 LG를 달라고 했습니까? 그냥 일할 수 있게 고용승계해 달라고 한 것뿐이지 않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박소영 분회장은 “왜 우리는 하루에 밥 두 끼 먹는 것조차 힘들어 이렇게 길바닥에서 처참하게 매일같이 싸워야 하냐”며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는데 노조를 만들었다고 90일 넘게 길바닥에 내던져 놓을 수 있냐”고 답답해 했다.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은 지난해 12월 해고됐다. 청소노동자들이 소속돼 있던 하청업체 지수아이앤씨는 원청의 계약해지를 이유로 청소노동자를 해고했다. 같은달 16일부터 청소노동자들은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농성을 이어 오고 있다. 원청 에스앤아이코퍼레이션은 ㈜LG가 지분 100%를 소유한 그룹 자회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