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제철 하청노동자가 지난 7월 발생한 두 건의 사고 조사와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원·하청 TFT 구성을 요구하고 있지만 현대제철은 응하지 않고 있다. 최근 두 달 새 안전사고만 30건 넘게 발생해 구조적 문제로 의심되는데도 현장 하청노동자 요구에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금속노조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지회장 이상규)는 올해 3월 “산업안전보건 의제에 한해 원청이 하청과 공동으로 교섭의무를 부담한다”는 중앙노동위원회 판정 이후 원청이 하청노동자 의견 수렴에 소극적으로 변했다고 비판했다.

“원·하청 TFT 구성 전례 있어”

12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지난 7월22일 오전 현대제철 하청업체 에어테크 소속 노동자가 공장 안 도로에서 작업 차량에 치여 두개골과 척추가 골절되는 재해를 입었다. 같은달 20일 오후 와이오테크 소속 노동자는 포트 센서 클리닝 작업 중 넘어져 오른쪽 허리 부근이 골절됐다. 지회는 두 사고에 대해 하청노동자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TFT를 구성하라고 현대제철에 요구하고 있다.

해당 사고가 발생한 와이오테크와 에어테크의 운영 주체가 같은 데다, 최근 두 달 새 10건 넘는 사고가 발생한 안전위험 지대이기 때문이다. 이상규 지회장은 “최근 공정이 조정되면서 (하청노동자가) 하지 않았던 업무에 투입됐는데 사고가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며 “TFT가 구성되면 나머지 사고에 대해서도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7~8월 지회가 노동자에게 제보받은 안전사고만 30건이 넘는다. 노동자 피해가 없는 경우도 있지만 재해로 단순 찰과상부터 열상·골절까지 다양하다.

원·하청이 참여한 TFT 구성이 불가한 것도 아니다. 현대제철 정비사업부 고로정비팀은 2020년 3월 2고로공장에서 가스 호스 교체 작업 중 안전사고가 발생하자 그해 현대제철, 협력사, 원·하청 노조 등 19명이 참여한 TFT를 구성해 작업 중 가스중독 사고 예방을 위한 안전작업 개선안 마련과 작업표준·위험성평가 제·개정을 논의했다.

이후에도 현대제철은 시설물 안전 개선 관련 회의에서 하청노동자의 의견을 수렴해 왔다. 지난 7월18일 작성된 회의록을 보면 크레인 탑승대 안전개선을 위해 현대제철·자회사 현대ITC·하청업체 디에이치스틸 직원들이 머리를 맞대기도 했다.

현대제철 “원·하청 공동 TFT 없어”

서현수 지회 노동안전보건부장은 “사고가 단순 인재라면 하청업체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서 정리할 수 있지만 대부분 사고는 설비사고”라며 “설비 개선 권한은 원청이 가지고 있으니, 원청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산업안전보건법 63조에 따르면 도급인은 자신의 사업장에서 일하는 관계수급인 근로자의 산재 예방을 위한 안전·보건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에 대해 현대제철쪽은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안전사고 조사와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며 “설비 관련 1일 이상 휴업을 필요로 하는 안전사고에 대해서는 협력업체 대표와 현장소장, 안전관리자가 참여하는 사고조사위원회를 통해서 사고 조사 및 대책 마련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회사 설명에 따르면 7월20일 발생한 사고의 경우 원청과 협력업체 대표, 현장소장, 안전관리자가 참여하는 사고조사위원회를 열었다. 그런데 협력사 노조는 사고조사위 참여 주체가 아니며, 7월22일 발생한 사고는 교통사고로 사고조사위 개최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또 원·하청이 공동으로 진행하는 TFT는 없다고 밝혔다.

서현수 부장은 7월22일 발생한 사고에 대해 “재해자를 친 운전자는 구급차만 불러 놓고 바로 일하러 갔다”며 “업무의 전반, 중심이 안전보건이 아니라 생산과 이윤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노위 판정 영향 미쳤나?”

지회는 중노위 판정 이후 하청노동자 의견 수렴에 원청이 더욱 소극적으로 변했다고 주장했다.

이상규 지회장은 “원청 부서별로 다르긴 하지만 사고가 발생하면 사고 조사·재발방지를 위해 현장 노동자(하청업체) 의견 반영을 대부분 했었다”며 “최근 중노위 판정 이후 (그런 흐름이) 바뀌었다”고 주장했다. 지회가 현대제철의 단체교섭 불응은 부당노동행위라고 구제신청을 제기하자 중노위는 올해 3월 현대제철이 산업안전보건 의제에 한해 사내하청 노동자의 교섭요구에 응하라고 판정했다. 하청노동자의 근로조건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현대제철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사용자라고 본 것이다.

중노위 판정에 근거해 지회는 올해 6월부터 현대제철에 지속적으로 교섭을 요청했다. 하지만 현대제철은 “대법원 판례 등에 따라 귀 노조 교섭요구에 응할 의무가 없다”며 “중노위 재심판정에 대해 법적 판단을 받고 그 취지에 따라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며 기존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 지회는 현대제철이 교섭요구에 응하지 않음에 따라 노동위원회에 시정조치를 요구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