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노동자 고 김용균 3주기 추모위원회 주최로 9일 열린 김용균특조위 이행점검 보고회에서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발언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청년 비정규 노동자 김용균(사망 당시 24세)씨는 2018년 12월10일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졌다. 유족과 김용균 사망사고 시민대책위는 정부에 사고 원인을 규명할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따라 2019년 4월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가 출범했다. 4개월여의 진상조사를 통해 확인된 사고의 주된 원인은 ‘위험의 외주화’였다. 특조위는 발전소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비롯한 22개 권고안을 정부에 제출했다. 당정은 같은해 12월 ‘발전산업 안전강화 방안’ 56개 과제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고 김용균 노동자 3주기를 맞은 지금까지도 발전소 비정규 노동자들은 단 한 명도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못했다. 위태로운 현실도 개선되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행되지 않은 정규직화 약속, 계속되는 고용불안

특조위는 발전소 현장의 구조적인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는 원·하청 간 소통 단절을 해소하고 위기관리를 일원화하는 한편 권한과 책임을 일치시키는 방안이 요구된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연료·환경설비 운전 분야 비정규직은 발전회사가 직접고용하고, 경상정비 분야는 한전KPS 재공영화를 통한 정규직화를 추진할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당정이 내놓은 대책은 연료·환경설비 운전 분야 비정규 노동자는 공공기관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경상정비 분야는 처우를 개선하고 고용안정성을 강화하겠다는 수준에 머물렀다.

이마저도 제대로 이행되지 못했다. 연료·환경설비 운전 분야 노·사·전문가협의체는 지난해 5월 한전산업개발 재공영화를 통한 정규직화 방안을 결정했다. 하지만 한국전력과 발전 5사가 자유총연맹이 보유한 한전산업개발 지분 31%를 매입하는 과정이 지체됐다. 한전은 지난 1월 자유총연맹에 기업가치 실사를 제안했다. 자유총연맹은 ‘실사 전 가격제시’를 요구하면서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졌다.

양측은 지난 7일 주식 양수도에 협력하겠다는 내용의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내년 1월14일까지 본실사와 가격협상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인수가격에 대한 입장차를 좁힐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특조위 민간위원으로 참여한 권영국 변호사는 “한전산업개발 공공기관화에 집중하되, 만약에 대비해 별도의 한전 자회사 설립과 발전회사 직접고용에 대한 검토를 병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경상정비 분야 노·사·전협의체는 지난 2월 기본 계약기간을 6년으로 연장하고 노무비 전용계좌를 활용해 처우를 개선하는 방안에 합의했다. 하지만 노무비 산정기준과 낙찰률 적용, 공동수급 의무화 추진 등을 놓고 노사 간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한국남부발전 경상정비 분야 하청업체 소속 40대 노동자 이아무개씨는 지난 8월 “비정규직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며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이씨는 원청의 갑질에 시달린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안전강화 방안 56개 중 47개 이행”
김용균 추모위 “체크리스트식 평가 한계”

정부는 9일 ‘발전산업 안전강화 방안 이행점검보고서’를 발간하고 56개 과제 중 47개를 완료했다고 밝혔다.

국무조정실은 원청의 안전보건 책임 강화를 위해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및 법 위반시 양형기준 상향,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원·하청 통합안전보건협의체 구성·운영, 산재 평가지표 개선을 실시했다고 설명했다.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서는 안전펜스 설치·조명 교체 등 위험요인 개선, 경상정비 분야 적정노무비 지급 시범사업, 유해·위험작업 2인1조 투입을 위한 인력충원 등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위험작업 일시중지제도(safety call) 시행과 관리감독자의 책임·권한 범위 명문화, 사내 명예산업안전감독관 선임을 통해 안전을 위한 노·사·정 역할을 강화했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다만 특조위 권고의 핵심인 연료·환경설비 운전 분야 비정규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에 대해서는 ‘진행 중’이라고 평가했다.

청년 비정규 노동자 고 김용균 3주기 추모위원회는 정부의 이행점검보고서가 ‘체크리스트’식으로 작성됐다고 지적했다. 권영국 변호사는 이날 오전 서울 중구의 한 교육회관에서 열린 특조위 이행점검 보고회에서 “특조위 권고안은 원·하청 구조에서 기인하는 구조적 원인을 중심으로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고용·임금구조 개선, 노동자 참여권 보장, 시설개선을 포함한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관리감독과 법제도 개선에 방점을 뒀다”며 “이에 반해 정부는 항목별로 완료 기준을 설정하고 이에 따른 이행 여부를 점검하는 데 그쳤다”고 주장했다.

발전산업 안전강화 방안을 대부분 이행했다는 정부의 자평에도 현장은 여전히 위험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윤근 노동환경건강연구소장은 “정부의 대책은 법규와 규정을 정비하는 규제시스템 수준에 머물러 있다”며 “노동자에게 위험을 알 권리와 위험에서 회피할 권리를 보장하는 ‘안전보건 작동시스템’을 실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